2015. 6. 16. 14:28ㆍ동구역사문화소식
동구 구석진 곳에 숨은 얘기가 있는 송현동(松峴洞)
송현시장 바로 건너편에 동인천역북광장이 있다. 광장은 중앙시장과 동인천역에 연(連)해서 있기 때문인지 이런저런 사람들이 많이 북적인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으뜸이 노인네들이다.
이들은 어제 만난사람 오늘 만나서 앉을 만한 곳이 있으면 다 차지하고서 삶의 지루함을 해소하는 듯하다.
광장 이쪽저쪽에서 한바탕 게걸스런 웃음소리가 하늘 높이 뭉쳐날고, 듣기도 민망한 저속어를 땅바닥에 토하는 소리가 있는 곳-동인천역북광장이다.
길손은 털털한 웃음이 있는 저쪽 끝에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한걸음 만에 그곳에 당도해서 그들의 동정을 살폈다. 아까 전에 노인들의 입에 웃음꽃을 피운 입담 좋은 노인장은 하던 이야기를 이어가다 억한 감정을 돌출한다. 그 때마다 빙 둘러 앉은 사람들은 혀를차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노인장의 얘기는 별관심이 없는 듯 서너 명의 노인들은 한쪽에 비켜 앉아서 담소를 즐기고 있다. 길손은 이들을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는 이들의 의중을 살피고 있는데, 한 노인네가 무정한 눈초리를 하고 외면을 하였다. 그래도 얼굴에 웃음꽃을 피워 올리고 말을 걸어보아도 찬 얼굴 표정은 그냥 그대로였다. 무안해서 멀거니 서있는데, 무표정한 노인네 바로 옆에 앉아서 담소하던 노인네가 민망했던지 자기 옆에 앉으란다. 내심 고맙고, 감사하기도하고, 반가웠다.
“안녕하십니까”
“…………………”
“참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시는가 봐요.”
“모두 비슷한 처지고 같은 또래라서 서로 허물없이 얘기하다가 한바탕 웃음보가 터지기도 해요.”
“예, 그렇습니까.”
정(情)이 말속에 퍼질 무렵, 초면에 실례가 안 된다면 인사나합시다 하였더니, 의성김가(金家)라고만하고 연세가 일흔 넷이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사는 곳을 물어 왔다. 그래서 송현동 일대를 걸어보고 싶어서 만수동에서 왔다고 하였더니, 김 노인은 송현3동쪽으로 손을 내밀면서 저쪽 길 건너편에 산다고 했다. 김 노인은 갯골이 집 앞까지 뻗어있어서 만조 때는 바닷물이 수문통까지 들어왔다고 했다. 그때가 참 좋았다고 하시면서 옛날이 그립다고 하였다. 말이 나온 김에 송현동을 양파껍질 벗기듯 옛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말씀드렸더니 마지못해 허락을 한다.
“옛날 송현동에는 소나무가 참 많았어. 소나무군락지가 동네 군데군데 있었고, 송림산(수도국산)산등성이에는 청솔이 뒤덮여 입산도 할 수 없을 만큼 소나무가 빽빽하였지. 송림산 서쪽 산기슭에 솔고개가 있었어, 이 근처에 송현동에서 가장 큰 동네가 있었지. 이 동네를 솔고개 마을이라고 불렀어. 솔고개를 한자로 의역하여 송현(松峴)이라고 했지. 그래서 마을 이름이 송현동(松峴洞)이 된 거야.”
김 노인의 얼굴의 주름살이 송현동과 세월을 같이 한 듯 거침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수도국산으로 이야기를 돌린 김 노인은 상기된 얼굴로 앞에 우뚝 솟은 아파트 쪽으로 손을 내민다.
“저 앞에 아파트 보이지. 아파트 담벼락에 솔빛마을이라고 쓴 곳이 수도국산이야. 1910년 12월1일부터 이산(山) 정상이 배수지와 제수변실을 품고 인천시의 식수를 공급하였지. 물론 수도국(水道局)도 이산에 있었어. 그래서 수도국산이라고 부르게 되었지. 원래 수도국산은 만수산이었어. 그러다가 송림산으로 불린 산이지.” 송현시장쪽에서 수도국산으로 올라가는 골목길을 걸어 올라서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도 관람하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사거리에 있는 송현파출소 쪽으로 손짓을 한다. 그 앞쪽으로 갯골이 뻗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송현3동 일대가 수문통에 있는 마을이지. 갯골이 화수, 화평, 금곡동까지 통해 있어서 바닷물이 슬금슬금 갯골을 타고 밀려들었지. 만조 때는 중앙시장입구와 송현초등학교 일대까지 바닷물이 쳐들어와서 수문을 해 달았어. 그래서 수문통(水門桶)이 되었지.” 그러면서 연대까지 일일이 셈하면서 소상히 송현동의 변천사를 설명해나갔다.
송현동은 본래 인천부 다소면 지역인데, 1914년 일제강점기 때 송현리라고 해서 인천부에 편입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1937년 일제는 동명(洞名)을 일본식으로 송현정(松峴町)이라 하였다며 김 노인은 얼굴이 일그러지시고 말씀이 험악해졌다. 해방이후 1947년에 동명(洞名) 변경으로 송현동(松峴洞)이 되었다고 했다.
산들바람 불어오고 새들이 노래하는 화사한 5월! 송림산(수도국산)에 올라가서 눈길이 가는대로 이 동네 저 마을 헤집고 다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남장현 실버기자<beat0131@hanmail.net>
** 이 글은 화도진소식지 354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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