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따라 세월따라) 동구 구석진 곳에 숨은 얘기가 있는 금창동

2015. 4. 13. 16:08동구역사문화소식

(길 따라 세월따라)

동구 구석진 곳에 숨은 얘기가 있는 금창동

 

 

- 화도진도서관 3월호 -

 

 

 

<창영동의 중심지였던 우각동(쇠뿔)>

 

<창영초등학교 앞에 걸쳐있는 쇠뿔고개(우각현)>

 

우리네는 보통 타향에서 동향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면 첫마디가

"어느 동네예요."

"언덕배기 느티나무 있는 마을인데요."

"내가 자네 자당(慈當)을 잘 안다네. 다 무고하시지."

"예, 그렇습니다." 이렇게 안부를 주고받는다. 이러한 정감이 있는 대화는 인천 사람이라고 다르겠는가.

"금곡동에서 살았지요."

"저는 창영동이예요. 금곡동에서 어릴 때 창영동으로 이사를 갔어요." 그 순간 냉랭하던 마음은 눈처럼 사그라지고, 금창동에 얽힌 마을의 이야기 봉오리가 아름답게 피어올라 온다.

 

원래 금곡리와 우각동은 인천부의 부대면에서 태어난 동네다. 금곡리는 이쪽저쪽 몇 채 안 되는 집들이 모여서 일개 마을이 된 동네다. 금곡리에는 쇠골이 있었다.

 

한자로 의역하면 금곡이 된다. 골마다 노천에 철광석이 즐비해서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쇠골이라 불렀다. 쇠골이 금곡리의 중심 마을이며, 금창동이 되기 전 창영동의 서쪽과 송현 1동의 동쪽지역이다. 우각동은 금곡리와 많이 달랐다. 창영동에서 배다리 쪽으로 쭉 뻗어 내려간 능선이 쇠뿔 같다고 해서 쇠뿔마을이라고 하였다. 한자로 우각동이다.

 

창영동의 중심이 되었고, 능선위로 미로 같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집 담장이 어른 키만 한 집들이 크게 높지도 않은 언덕을 뒤덮고 있고, 창영동 고서점거리에서 창영초등학교 바로 앞쪽으로 걸쳐있는 쇠뿔처럼 휘어진 쇠뿔고개가 희미하게나마 우각동의 자취를 이어가고 있다.

 

일제강점기가 지나고 해방이 되면서, 인천의 부대면은 쇠골 일대를 광역화해서 금곡리를 금곡동으로 멋지게 마름질하고, 우각동은 창영동으로 동명을 개명하였다.

우각동은 터가 드센 나보다. 고달픈 삶 속에서 이집저집의 굿판 소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래서 그런지 "새롭게 번창하기를 기원한다."는 뜻을 담아서 창영동을 출생시켰다. 그리고 오늘날의 금창동은 등치 큰 동으로 재탄생하였다. 1985년 11월 15일 금곡동과 창영동은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대 통합하여 두 동(洞)의 머리글자를 따서 금창동이 되었다.

금창동은 노상 박물관이다. 이 구석 저 구석에 기이한 땅 이름이 있고, 동네와 골목이 있다. 그것들의 정겨운 의미가 그 이름 안에 녹아있는 곳. 그것들을 관람하러 한 번쯤 우각로를 걸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남장현 실버기자 beat013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