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동구를 빛낸 인물은 누구? 송현 1 · 2동 솔빛로에서 볼 수 있어요!

2016. 2. 18. 13:19동구역사문화소식



인천시 동구를 빛낸 인물은 누구?
송현 1 · 2동 솔빛로에서 볼 수 있어요!



인천시 동구 송현 1 · 2동의 솔빛로 일원이 '동구를 빛낸 인물전' 패널을 설치하여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기존에 주변이 옹벽으로 돼있어 다소 어두운 분위기 였던 솔빛로에 역사적 사건과 우리동네를 빛낸 인물을 알리고 길거리를 산뜻하게 조성하여 신선하다는 반응인데요. 


솔빛로의 '동구를 빛낸 인물전'은 지난해 우리마을 가꾸기사업 일환으로 발굴회의를 거쳐 2015년 7~10월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으며, 인물 선정은 주민들의 공모를 통해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최종결정하여 총 7명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동구로 빛낸 인물로 선정된 7명은 과연 누구인지, 동구지기와 간단하게 살펴볼까요?!





1. 강재구 (1937~1965.10.4)

인천시 동구 창영동 30언덕에 자리 잡은 인천 창영초등학교가 배출한 인물입니다. 강재구 소령은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육군보병학교, 수도사단 제1연대 소대장, 1군 하사관학교 수류탄 교관 등을 역임하였는데요1965년 한국군 1개 사단의 월남 파견이 결정되자, 지원하여 맹호부대 제1연대 제10중대장이 되었습니다. 10월 4일 파월을 앞두고 대원의 수류탄투척 훈련을 실시하던 중 부하 사병이 실수하여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았고, 이 수류탄이 중대원들이 모여 있는 곁에 떨어뜨리자 자신의 몸으로 수류탄을 덮쳐 수 많은 부하의 생명을 구하고 산화하였습니다. 오늘날 강재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후세에 전하고자 그의 모교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육군사관학교에는 동상이, 그가 산화했던 지역에는 강재구 공원이 마련되어 국민정신의 도장으로 길이 보존되고 있답니다.


2. 장면(1899~1966)

본관은 옥산, 호는 운석으로 인천 출신의 정치가인데요. 파리에서 열린 제 3차 유엔총회에 한국 수석 대표로 참가, 한국의 국제적 승인을 얻었고, 6 · 25 전쟁때는 주미 대사로서 유엔의 지원을 얻는데 크게 공헌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초로 의원내각제를 실시하고, 4.19 이후 혼란스러운 정국 상황에도 불구하고 민주적 선거절차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어낸 인물입니다. 그러나 집권 후 국민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정책의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를 초래하여 5.16 헉명으로 9개월만에 실각하고 말았는데요. 하지만 오늘날 근대화에 대한 이상과 정책 면에서는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3. 박경리(1926.10.28~2008.5.5)

인천 출신은 아니지만 여고 졸업 후 신혼생활을 인천시 동구에서 했던 <토지>의 저자 박경리 작가. 그리고 당시 운영했던 헌책방이 1호점이 되어 현재 배다리 헌책방 거리와 벽화거리를 조성할 수 있었는데요. 토지 외에도 김약국의 딸들, 불신시대 등 많은 작품을 남긴, 길이 남을 대한민국의 소설가입니다.


4. 김찬삼(1926~2003)

김찬삼 역시 인천창영초교 29회 졸업생인데요. 1950년 서울대 사대 지리학과 졸업 후 인천의 고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1958년 첫 세계일주를 떠난 김찬삼은 30여년에 걸쳐 세계일주 3회, 테마여행 20여회를 통해 150여개국 1000여 도시를 찾았는데요.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60년대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고, 70년대 해외이민 시대를 열고, 세계가 넓음을 알게 해준 세계여행의 선구자이자 개척자입니다. 


5. 황정순(1925~2014)

한국의 원로배우 황정순. 서구식 신식 교육의 선구자로 꼽히는 인천시 동구의 '영화초등학교' 출신인데요. 1941년 허영 감독의 <그대와 나>에서 단역으로 영화계에 발을 내밀었고, 1949년 장황연 감독의 <청춘행로>에서 며느리 역할을 맡으며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김약국의 딸들>,<장남> 등을 비롯해 43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250편의 넘는 연극 무대에도 오르는 등 한국 여배우 중 최대 출연 기록을 세웠으며, 2007년에는 영화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세번째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현액되었습니다.


6. 김명진

1919년 3 · 1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당시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인천창영초교) 3학년 학생이었던 명진은 학교 전화선을 끊고 동맹 휴교를 선언했으며, 인천공립상업학교(현 인천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주도하다가 투옥되었는데요. 김명진은 수화기 횡령사건으로 가택 침입, 통신장애 등 여러 죄명이 붙여져 형법 제254조 부정형중징역으로 쳐해졌습니다. 오늘날 인천창영초교는 옥고를 치른 김명진의 유족들이 국가로부터 받은 연금을 모교 장학금으로 전달한 이후, '김명진장학회'를 설립하여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7. 김동수(1916~1982)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그 중심에서 독립운동을 이끈 인천 출신의 독립운동가입니다. 일찍부터 독립운동가들이 조직한 회랑사 등 각종 소년단체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1934년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 들어 김구가 조직한 특무대에서 반일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며, 1937년 임시정부에 합류하여 김구 등 요인들을 경후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아울러 새로 모집된 대원들에 대해 군사훈련을 시켰으며, 8. 15 광복당시 임시정부 주화대표단 동북특파원으로 교포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 안전한 귀국을 주선하는 임무를 하였습니다.



이처럼 인천시 동구뿐만 아니라 한국을 빛낸 인물들이 정말 많은데요. 이번 주말 송현 1 · 2동 솔빛로에 나와 산착샘아 걸으며, '동구를 빛낸 인물전' 패널을 읽으며, 지역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자긍심을 가져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