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향기, 영화 '한공주'

2014. 5. 30. 13:33동구역사문화소식

영화의 향기, 영화 '한공주'


왜 공주일까? 


눈물이 고인 큰 눈으로 서글프게 우리를 바라보는 포스터의 여주인공을 보면서 그 이름이 먼저 들어왔다. 고귀한 인간이지만 한없이 약하고 여려서 누구나 무너뜨리고 흔들어버릴 수 있는 존재가 공주이기 때문일까? 그 누구로부터도 보호를 받지 못하고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약자의 대변인으로 ‘공주’를 설정했을까?





성폭행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많이 나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는 해외 영화제에서 9개나 상을 받으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지금까지 나온 영화와는 달리 피해자의 현재 삶을 따라가며 과거의 상처를 드러내고 그녀가 어떻게 삶의 무게를 견뎌내는 지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그 과정에서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 어른들의 비열한 모습도 함께 그려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영화는 무겁고 차분하게 응시하며 정답에 도달하는 길은 숙제로 남겨 준다.


2005년 43명의 남자아이들에게 1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폭행과 협박을 당한 밀양 여중생 집단성폭행 사건이 이 영화 탄생의 모티브가 되었다.


이혼가정에서 아빠랑 살고 있는 고등학생 공주는 음악에 재능이 있는 열 일곱 살 평범한 소녀이다.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동욱은 공주가 일하는 편의점 사장 아들이면서 공주 친구 화옥과 사귀고 있다. 공주의 집에서 불량배들은 동욱을 협박해 술판을 벌이고 화옥과 공주는 그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한다. 화옥이 자살하자 가해자들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 변명으로 일관하고 공주는 담임선생님의 주선으로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간다. 캐리어 가방 하나 들고 온 낯선 곳은 간이역처럼 안정을 주지 않는다. 이혼한 엄마가 그리워 3년 만에 찾아갔지만 자신의 새 보금자리가 더 소중한 엄마는 딸을 밀어낸다.


전학 온 학교에서도 마음의 문을 닫은 공주에게 다가 온 은희는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공주 모습에 호감을 느끼고 아카펠라의 보컬이 되어달라고 청한다. 좋아하는 음악과 새로 배우기 시작한 수영, 그리고 은희의 따뜻한 마음에 서서히 공주의 차가운 마음이 녹아갈 때 또 사건이 터진다. 


공주 아버지는 가해자들의 돈을 받고 탄원서를 받아들이고 합의가 안 된 부모들이 학교로 쳐들어와서 공주는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된다. 공주를 돌보아주던 선생님도 마지막에는 성의 없는 위로로 끝을 낸다.


공주는 다시 가방을 끌고 밤에 떠난다. “사과를 받아야 하는 데 제가 왜 피해야 하나요?” 공주의 그 한 마디는 잘못된 현실을 응시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품격을 더 높이 올려 놓는다. 


다리 위에 남겨진 공주의 가방을 보여주던 화면은 어느새 강물로 옮겨진다.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공주는 죽었나보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공주가 물속에서 얼굴을 내민다. 살았구나. 안도는 순간이고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는 공주.  물위에 떠서 고개를 내밀지 못하고 떠다니는 공주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난다. 25m까지만 수영하고 싶다던 공주는 다리를 향하여 헤엄치고 있다. 그 누구의 보호도 없이 혼자서……


“저는 잘못한 게 없는 데요?” 

“공주야! 너는 수영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니?”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아서.”


영화속의 대사가 온 몸으로 파고 든다.


신은주 기자  muisi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