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향기, 영화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2014. 10. 29. 10:23동구역사문화소식

영화의 향기, 영화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우리가 한국 단편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곳에 우리의 근현대사를 몸으로 겪으면서 살아간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에 읽었지만 지금은 기억에서도 가물가물한 그 소설이 새로운 형태로 영화관에서 우리들을 부르고 있다. 애니메이션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은 '소중한 날의 꿈'을 통해 한국 애니메이션만의 감성을 보여 준 안재훈, 한혜진 감독의 작품이다.





근현대 문학작품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것은 처음으로 각각 30분 남짓한 세 작품이 이어지는 옴니버스 구성이다. 3차원(3D) 애니메이션의 화려함 대신 편안하고 정겨운 2D 애니메이션의 화면 속에는 원작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살아있다. 그래서 고향에 돌아온 듯한 마음이 든다.


메밀꽃 필 무렵, 운수 좋은 날, 봄봄은 우리 민족의 슬픈 상처가 배여있는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암울한 시절에 장돌뱅이, 인력거꾼, 데릴사위로 살아갔던 그들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여상미 덕분에 슬프지만 않다. 오히려 그래. 그랬구나. 그렇게 살아갔지. 이해하는 마음으로 넘어간다. 영화로 만나는 그 시절 이야기는 영상으로 다가 와서 가슴 속에 아름답게 물이 든다. 그림속에 녹아 든 사람들의 삶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추억이라는 옷을 입혀 그리워한다.


이효석이 '소금을 흩뿌린 듯한 메밀밭이 달빛에 숨이 막힌다'고 표현한 봉평의 메밀밭은 서정적인 그림으로 우리를 잡는다. 봉평으로 달려가서 그 밭에 서고 싶은 마음이들 정도로 그림은 무척 아름답다. 단 한 번의 사랑을 평생 가슴에 품고 장돌뱅이로 달빛을 벗삼아 이 장 저 장 옮겨 다니는 낭만적인 서생원도 매력적이다. 평생을 함께 한 허생원의 동반자 '나귀'는 차라리 귀엽다. 어쩌면 아들일지 모르는 동이에 대한 애틋함은 그림이기에 더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하루 벌어 힘들게 살아가는 김첨지가 그동안 만져 보지 못한 큰 돈을 손에 넣은 '운수 좋은 날'은 아내가 눈을 감은 날이다. 채 익지도 않은 밥을 허겁지겁 먹고 탈이 난 아내는 제발 일하러 가지 말라고 애원했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돈 벌러 나갈 수 밖에 없던 가장의 슬픈 현실은 내리는 눈과 함께 서글프게 와 닿는다. 돈이 많이 벌ㄹ려서 오히려 불안한 그는 그 불안을 감추기 위해 술을 먹고 취해서 아내가 좋아하는 설렁탕을 들고 들어오지만 아내는 이미 저 세상 사람이다. 우리 민족의 가난한 삶이 일제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운수 좋은 날은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아프다. 그림은 원작의 분위기를 살렸기 때문에 아름다움보다는 서글픔을 불러 일으킨다. 데릴 사위와 장인의 갈등을 해학적으로 그린 '봄봄'의 어리숙한 '나'는 아내 될 점순의 키가 자라지 않아 속상하고 일만 시키는 장인에게 화가 나지만 꾹 참고 황소처럼 일을 한다. 장인의 음흉한 속셈을 남으로부터 듣고 '나'는 장인에게 대들어 한 바탕 난리를 피우지만 다시 장인의 꾐에 넘어간다. 뒷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가을에 약속대로 성례를 시켜줬을까?


요즘 나오는 애니메이션들은 거의 태블릿PC로 작업하지만 이 영화는 모든 밑그림 작업을 "손맛을 살리기 위해" 연필로 7만 장을 그렸다. 제작사 이름도 '연필로 명상하기'다. "연필로 그린 그림에는 애니메이터의 개성이 더 잘 살아 있다. 선 하나, 주름 하나 손으로 정성껏 표현해 그리는 게 우리가 추구하는 애니메이션 방식이다." 안재훈 감독의 말이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부부 감독인 두 사람은 앞으로도 한국의 대표적인 단편소설을 계속 영화로 만들어낼 계획이라고 한다. 극장에서 만나는 애니메이션 단편문학은 우리들이 잊고 있었던 이야기와 감성을 일깨원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무척 편안하다. 그림이 우리에게 잔잔한 웃음과 따뜻함을 선물로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사람들이 단편문학 읽기에 재미를 붙이기 되지 않을까? 주옥같은 작품들이 다시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될 것 같다. 그 의미있는 작업을 시작한 감독에게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낸다.


신은주 기자 muisi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