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31. 11:25ㆍ동구역사문화소식
길따라 세월따라 "잊혀진 추억을 반추하는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자네 어디 살아" 사는 동네 이름을 대면 "좋은 동네 사네" 여기에서 끝나면 좋은 데 "옛날엔 깡촌 이였지" 라고 꼭 한마디씩 토를 단다. 그만큼 고달픈 삶을 영위하는 서민들의 동네가 많았다는 반증이다. 달동네는 1950년대 말에서 1960년 중반 사이에 판자촌 주민들은 나라의 정책을 이기지 못하고 도심에서 밀려나 높은 산자락에 천막을 치고 살았는데, 방에 누우면 밤하늘의 별과 달이 잠자리를 같이 해주었다. 이를 보고 '달동네'라고 하였다. 달동네하면, 제일 첫 머리에 떠오르는 것들을 열거해보면 잘 살지 못하는 동네, 산동네, 불량노후 주택이 모여있는 곳 등이 달동네에 대한 우리네의 인식일지도 모르겠다.
수도국산 달동네는 개항기부터 시작된다. 부산과 원산에 이어 인천항도 일본에게 목덜미를 잡혀 맥없이 문호를 개방하였다. 일인과 청국은 제물포일대로 봇물처럼 밀려들었다. 청·일 조계지에는 깃발이 내걸렸고 나머지 외국인 조계지에도 깃발이 펄럭거렸다. 청·일 조계지에서 조상대대로 보금자리를 튼 조선인들은 수도국산 언저리로 쫓겨나 모둠사리를 하였다. 한국전쟁 때는 고향을 떠나온 피난민들이 모여서 살았고, 1960년에서 1970년대의 산업화시기에는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지방 사람들로 붐볐다. 5만5천여 평의 산비탈에 무려 3천여 가구의 게딱지같은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고단한 삶을 산 인천의 전형적인 달동네가 되었다.
▲ 수도국산 달동네 철거 현장
그런 수도국산도 거센 세월의 변화 앞에선 어쩔 수 없었나 보다. 2001년까지 불량주택 1천 7백80동을 철거하고 아파트 3천여 세대 분을 짓기 위한 전국 최대 규모의 송현지구(수도국산)주거환경개선사업이 추진되어 지금은 말쑥하고 거대한 아파트촌으로 변모하였다. 이제 수도국산 달동네의 역사는 기록에서나 찾아보게 되었지만, 동구청은 철거 현장에서 수집한 그림, 문패, 수도국산 지번을 적은 보안등 표시판, 붓글씨로 운치를 낸 문짝 등을 모아 수도국산에 박물관을 건립하였다.
▲ 휴식을 즐기는 할아버지의 머리위로 박물관의 이름이 금빛 찬란하다.
지금은 수도국산 달동네의 풍광은 간데온데없고 아파트단지와 공원으로 조성하여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옛 달동네의 모습을 작지도 크지도 않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을 통해서 그나마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어서 천만 다행이다. 우리는 온 나라가 잘살아보자고 땀 흘렸던 세대와 그러하지 못한 세대가 같이 살아가고 있다. 자녀들과 손에 손을 잡고 어려운 시절, 손때가 묻어있는 생활용품과 그 때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신세대와 기성세대가 서로를 이해하는 공간이 되고 있고, 사람냄새가 있었던 달동네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도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은 잊혀진 추억들을 재생하고 있다.
남장현 실버기자 beat013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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