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근대교육의 산실 영화,창영초등학교

2014. 7. 11. 11:13동구역사문화소식

인천 근대교육의 산실 영화,창영초등학교


개항기, 인천의 길은 배다리-우각로로 통했다. 인천, 한양을 오가는 길손의 발길을 이 길 이 받아주었고, 제물포-노량진간 경인철도도 우각로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양의 근대 문화도 쉬엄쉬엄 이 길을 따라서 똬리를 틀었다.


쇠뿔 고개에 올라서니, 사방이 한눈에 들어왔다. 양장(羊腸)같이 꾸불꾸불한 한 뼘내기 골목길, 고만고만한 등치에 머리를 마주하고 있는 기와지붕들이 일거에 고단한 삶을 알아보게 한다. 수도국산에 시야를 멈추었다. 아파트 숲이 거만하게 배다리-우각로를 건너다보고 비웃음을 흘리고 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마음의 여기저기를 어지럽히고 있을 때, 바람이한바탕 웃음소리를 몰고 간다. 영화․창영초등학교 꿈나무들이 재잘대는 맑고 고운소리가 우각로를 적신다. 꿈과 희망을 가방 한가득 담아가는 꿈나무들을 만나러 걸음을 재촉했다.


영화초등학교는 인천광역시 동구 창영동 36번지에서 인사를 하였다. 흘러간 세월을 무시한 듯 그 당당한 풍채는 지금도 살아있다. 어느 새 손때 묻은 이력서에 길손의 시선이 머물고 있었다.                       



영화초등학교의 구관 / 영화초등학교의 신관



“영화학교는 기독교 선교를 목적으로 1892년 4월 미국선교사 조원시(존스)에 의해 영화 학당으로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학교이다. 1910년 3월에 준공된 이 건물의 내부는 성서연구와 기독교교육을 목적으로 교회 내에 설치한 전형적인 주일학교형식을 취하고 있다”


난세에 태어난 영화초등학교는 한국최초의 여대생 김애리시, 최초의 여성박사 김활란, 이화학당 이사장 서은숙, 이화여대 사범대학장 김애마, 이화여대 음대학장 김영의, 영화배우 황정숙 등 걸출한 재목들을 배출한 명문학교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창영초등학교는 1922년 붉은 벽돌로 길게 늘어뜨린 일자형 교사(校舍)다. 지붕은 아랫방을 밝게 하기 위하여 지붕창을 두었고, 교실 벽은 나무를 얇게 다듬어서 심을 넣고 흙을 발랐다. 현관과 1층은 반아치, 2층은 수평아치로 마무리한 것이 초기 우리나라 근대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천 창영초등학교 구관(左전면, 右옆면)



창영초등학교는 인천광역시 동구 창영동 30번지가 고향이다. 악수를 청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교정 내에서 발품을 팔았다. 저쪽 모서리에서 남루한 이력서를 발견하고 안도의 긴 한숨을 쉬었다. 


“1907년 4월 보통학교령에 의해 인천 최초의 보통학교로 1907년 12월에 낙성식을 하였다. 1910년 3월 26일 제1회 졸업식을 거행하였다. 주요 졸업생은 한국최초의 고미술사학자 고유섭, 대법원장 조진만, 서울대학교 총장 및 부흥부장관 신태환, 법무부 장관 및 대법원장 조진만, 국회부의장 김은하, 파월훈련중 산화한 강재구 소령이 있다.”


영화,창영초등학교는 배다리-우각로가 있어서 좋고, 가슴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꿈과 희망이 있어서 마음이 편하단다. 교정의 울타리 숲에서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남장현 실버기자  beat0131@hanmail.net